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성호 이익 선생은 1681년 아버지가 유배된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성호가 두 살이되던 해 세상을 뜨게 된다. 그 후 고향인 안산 첨성리(지금의 일동)에 내려와 자라면서 둘째 형인 이잠에게 글을 배우며 공부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이익 선생은 학문을 익히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25세 때 과거 시험을 보았으나 떨어졌습니다. 둘째 형이 장희빈을 두둔하는 소를 올려 역적으로 몰려 옥에서 죽은 사건을 계기로 과거에 뜻을 버리고 평생을 안산에 숨어 지냈다. 아버지가 연경에 갔다가 귀국하면서 사가지고 온 수천 권의 서적을 통해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중국으로 유입된 서학의 수용으로 세계관과 역사의식을 확대, 심화시켜갔고 보다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방식을 얻을 수 있었다. 성호의 학문이 알려져 많은 제자들이 안산으로 찾아 든 것은 그의 나이 30대부터 였다. 성호의 훌륭한 제자들은 조선 후기 실학의 사상과 학문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그의 나이 47세 때에는 그의 학문과 덕행을 듣고 몇 차례 벼슬을 내리려고 불렀으나, 한 번도 이에 응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학문에만 정진하였으니, 그가 주장한 ‘사농합일(士農合一)’, 즉, ‘선비는 농사로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철저히 실천한 셈이다. 그의 학문은 일가에 이어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고, 윤동규, 신후담, 안정복 등의 문인들이 학문의 흐름을 이어 받았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아 가세가 점점 기울었고 오랜 병고 끝에 1763년(영조 39)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성호사설>, <곽우록>, <성호선생문집>, <근사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