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최치원의 가문은 신라의 6두품 중에서 신라 유교를 대표할만한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는데, 최치원은 그 중에서 신라말기 3최의 한 사람으로 6두품 출신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갔으며, 유학 7년만인 18세에 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885년 귀국할 때까지 1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면서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많은 글을 지었다. 29세에 신라로 돌아와 당나라에서 배운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을 실천해보려 했으나 귀족 중심의 신분체제의 한계와 신라말기 국정의 혼란함을 보고 중앙에서 먼 직책을 맡기도 하였다. 10여 년 간의 관직에 있으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당시의 귀족들에게 막혀 실행되지 못하였다. 신라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느낀 최치원은 40세의 나이로 관직을 버리고 숨어 지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 대한 고민은 후계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하남에 최치원의 뜻을 잇는 고운최치원도서관이 있다. 경주 최씨 후손들이 건립한 사립 공공도서관으로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던 최치원의 기록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