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서유견문'을 저술한 사상가이자 정치인이다. 1870년 박규수에게 실학사상을 배우면서 해외문물을 습득하였다. 188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유학생이 되어 일본학자 및 정치가들과 교류하였다.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귀국하였고, 이후 '한성순보'의 실무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1883년 7월에는 보빙사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1884년에는 미국의 담머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1885년에 귀국하였는데, 갑신정변 주모자인 김옥균, 박영효 등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개화파로 간주되어 체포되었다. 이후에는 1892년까지 연금생활을 하면서 '서유견문'을 집필하였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수립된 친일내각에 참여하며 갑오개혁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1896년 아관파천으로 친일내각이 붕괴되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한국인 장교들과 함께 쿠데타를 기도했으니 실패하여 유폐되기도 하였다. 학교, 야학회 등을 설립하여 계몽에 앞장서는 한편 한성직물주식회사 등을 조직해 민족산업 발전에도 관심을 가졌다. 일제가 수여한 남작의 작위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연금기간 동안 집필한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서유견문'은 국한문혼용체(국문에 한자를 섞어 쓴 글체)로 서술되었으며, 서양의 근대문명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이다. 그렇지만 서양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개화의 주장을 담아 서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