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서, 경기도 파주 우계에서 거주하였다. 일찍이 1554년에는 같은 고을의 이이(李珥)와 사귀게 되면서 평생지기가 되었으며, 1568(선조 1)에는 이황(李滉)을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이이와 교류가 깊고 정치적으로는 서인의 입장을 대변하였으나 학문적으로는 이황의 이기호발설(이황이 인성(人性)과 천리(天理)와의 관계를 밝힌 이론)을 지지하여 이이와 사단칠정(사단(四端)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을 말한다. 칠정(七情)은 인간의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표현되는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망(欲)의 일곱 가지 자연적 감정을 가리킴) 논쟁을 벌여 당시 유학계의 큰 화제를 일으켰다. 관직에 나가지 않다가 1589년 기축옥사로 서인이 집권하면서 이조판서, 좌참판을 두루 거쳐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김궤의 의병 군무를 도왔으며 해주에서 중전을 따라다니며 곁에서 보호하고 지켰다. 1598년 지병이 악화되어 파산서당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우계집>, <주문지결>, <위학지방> 등이 있으며 좌의정에 추증(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