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조좌랑, 동부승지, 부제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한음 이덕형의 묘와 신도비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왜적이 화의를 요청하자 단독으로 회담하여 대의로써 논박하였고, 이후 명나라 지원병을 오게 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이여송의 접반관이 되어 줄곧 같이 행동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서울의 방어를 강화하였고, 1601년 도체찰사를 겸하면서 전란 뒤의 민심 수습과 군대 정비에 노력하였다. 1606년 영중추부사가 되었다가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이 언급되자 이항복과 함께 적극 반대하다 관직을 삭탈당했다. 그후 용진으로 물러가 병으로 죽었다. 어렸을 때 이항복과 절친한 사이로 기발한 장난을 잘해 많은 일화가 전해지며 글씨에 뛰어났다. 저서로는 <한음문고>가 있다. 묘소는 청계산 줄기 형제봉 하단에 있으며, 신도비(높이 356㎝, 폭 110㎝, 두께 42㎝)는 효종 4년(1653)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조경(趙絅)이, 글씨는 오시수(吳始壽)가, 전자(篆字)는 정규상(鄭奎祥)이 썼다. 현재 비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전각 내에 세워져 있다. 신도비에서 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영정각은 1977년에 문중에서 건립했는데, 내부에는 이덕형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