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조선시대 인조 때의 문신이며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 이식(李植, 1584~1647)이 제자와 자손들을 교육하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과 그의 묘이다. 그는 병약한 체질과 임진왜란 때문에 12세가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이안눌(李安訥)과 정철(鄭澈) 등에게 수학하였다.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7년 뒤 선전관이 되었으나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본격적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대사간·대제학·이조판서·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편찬과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개수(改修)를 주관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갔으며, 1642년(인조 20) 김상헌(金尙憲)에 동조해 청나라와의 전쟁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의주로 가서 구금되었지만 곧 풀려났다.이후 대제학·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1647년(인조 25) 택풍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백아곡(白雅谷)에 있는데, 택풍당에서 동쪽으로 약 180m 떨어진 야산 기슭으로, 부인과 합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