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조선 전기의 효자 하우명(河友明, 1413~149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세운 정각(旌閣)이다. 그는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 1376~1453)의 아들로,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하우명은 아침 저녁으로 항상 손수 조리한 음식으로만 상(床)을 올렸으며, 어머니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선생은 너무나 애통하고 상심하여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제수(祭需)는 반드시 손수 마련하는 등 정성을 다해 제사를 받들었다고 한다. 성종 4년(1473) 지방관이 그의 효행을 아뢰자 나라에서 정각을 세우고 호역(戶役, 국가에서 집집마다 부과하는 부역)을 면해 주었다. 정각은 맞배지붕에 한식기와를 얹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방풍판(防風板)이 달린 목조건물이며, 정려비(旌閭碑)는 높이 1.27m, 폭 61cm, 두께 22cm의 규모이다. 이 비각은 1700년대에 처음 세워진 후, 후대에 내려오면서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 하였으나 관리 소홀과 비바람 등으로 인해 원형을 잃어가자 1988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이어 1997년에 담장을 설치하였고, 2008년 다시 정각을 보수하였다. 1995년 정각 입구에 조선 성종조에 좌찬성을 지냈던 강희맹이 직접 쓴 '소래하중추정문기(蘇萊河中樞旌門記)'를 비석에 옮겨 세웠고, 현재 시흥시 향토유적 제11호로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