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문신이었던 보한재(保閑齋) 신숙주(1417∼1475) 선생의 묘이다. 세종 20년(1438)에 사마양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세종 25년(1443)에는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세조가 즉위한 뒤 예문관대제학,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으며 예종 1년(1471)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왕명으로 명나라 황찬(黃瓚)의 도움을 얻기 위해 요동을 13차례나 왕래하기도 하였다. 특히 세조와는 이전부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계유정난 과정에서도 세조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는 뛰어난 학식과 글재주로 모두 6명의 임금을 섬기면서『국조오례의』,『동국통감』,『세조실록』,『예종실록』을 비롯한 많은 편찬사업에도 참여하였다. 묘는 부인 윤씨와의 묘와 나란히 쌍분을 이루고 있으며, 봉분은 2기가 있다. 봉분 사이에는 1897년에 세운 묘비가 있고,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다. 봉분 좌우에는 문인석 2쌍이 서 있다. 묘역 아래에는 이승소가 글을 지어 성종 8년(1477)에 세운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