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소요산 요석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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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칭 : 소요산 요석궁 이야기
  • 위치 : 동두천
  • 시기 : 고려시대이전

원효대사는 신라의 서울(경주)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 라고 노래를 불렀다. 아무도 그 뜻을 아는 사람은 없었으나 태종무열왕은 누가 귀부인을 원효대사와 맺어주면 국가에 큰 일을 할 사람을 낳겠다는 의미라고 간파하였다. 마침 문무왕 의 딸인 요석공주가 백제와의 싸움으로 인해 남편을 잃은 후라 원효대사를 그녀와 맺어줄 것을 결심하였다. 원효대사가 경주에 있는 남산에서 내려와 문천교를 지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원효대사를 궁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나졸들은 문천교 밑에 숨어 있다가 원효대사가 오는 것을 보고 일제히 길을 막은후 요석궁 으로 갈 것을 청하였다. 원효대사가 못 가겠다고 하자 나졸 중의 대표 한 사람이 자신과 무술을 겨루어 대사가 지면 요석궁으로 가고 반대로 이기면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렇지만 무예가 특출했던 원효대사를 이길 수가 없었다. 나졸들 모두를 상대하고는 문천교에 빠뜨렸는데 마지막 나졸 한 명과 함께 원효대사가 문천교 밑으로 일부러 빠져 궁으로 모시고 가게 되었다. 젖은 옷을 말려드린다는 구실을 삼아 요석궁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이 때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게 된 것이다. 그 후부터 원효대사는 촌락으로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하기 시작하여 후일 삼국통일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원효대사는 대략 30∼40세 정도 되었을 때 소요산에 머무르며 지금의 원효대에서 공부를 하며 수행에 전념하였다. 이 시기에 요석공주도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에 들어와 조그마한 별궁을 짓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원효대사가 공부하는 원효대를 향하여 삼배를 드렸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 때의 별궁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요석궁지라 불리고 있다.

참고링크동두천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