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역사를 문화유산과
인물을 통해서 알아봅니다.

수원의 지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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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칭 : 수원의 지명이야기
  • 위치 : 수원
  • 시기 : 대한민국시기

[이목동] 원래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골로 불리던 것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이목(梨-오얏/배나무 이, 木-나무 목)동이란 지명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평동] 평동((坪-들 평, 洞-고을 동)이란 지명은 본래 수원군 남부면 평촌과 안용면 평리 지역으로 벌판이 있어 벌말, 평촌, 평리라 하였다. 특히, 벌말은 평야와 관계있는 자연 지명으로 평야지대 가운데에 만들어진 마을, 벌판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쓰였다. [오목천] 내가 오목한 곳을 따라 흐르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쪽 가까이에는 칠보산이, 서쪽 멀리에는 용화출 고개의 산자락이 둘러쳐져 있어서 부근의 장지동과 권선동, 대황교동이 삼태기 바닥의 형태를 지녔다. 이처럼 오목한 지형에 냇물이 흘러 오목천(오목+천(川- 내 천))이 된 것이다. [조원동] 이 곳은 대추나무가 많아 대추원, 조원말, 또는 조원, 주원말, 주안골, 주원, 주안말 등으로 불렸다. 일반적으로 대추나무가 많아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棗-대추 조)는 대추를 뜻하는 한자) [고등동] 팔달산에 있는 화성장대(서장대)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볼때 정찰과 수비가 용이하도록 생김새가 고래의 등처럼 높게 보여 이곳에서 적을 살피고 기다릴 수 있는 적절한 곳이라 여겨서 높을 고(高), 기다릴 등(等)을 써서 고등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매탄동] 매탄이라는 이름은 매교동과 매탄동 경계에 있는 매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흐르다가 이 지역에서 여울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매여울이라 불리던 데서 비롯되었다. 한자어로 여울이라는 뜻을 가진 '탄(灘)'자를 써, 매탄이 되었다고 한다. [우만동] 옛날 이 동네에 최씨와 임씨 등이 소를 많이 키우며 살았기 때문에 ‘우(牛)만리’ 또는 ‘소만이’ 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는 화홍문 근처의 우시장으로 가기 위해 각 지역에서 모인 소들을 이 지역에서 하룻밤 재우고 끌고 갔기 때문에 우만동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서둔동] 정조대왕이 화성을 만들 때, 서쪽에 축만제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하여 둔전( 屯-진칠 둔, 田-밭 전: 국가의 토지로 여기서 거둔 곡식의 일부로 군대의 식량을 보충하거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썼다.)을 경영하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따라서 '서둔(西屯-서쪽의 둔전)'이 설치되고 경영하던 곳이기 때문에 '서둔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율전동] 약 300여 년 전에 파주 염씨, 강릉 유씨, 인동 장씨 등 3성(姓)이 이 지역에 자리잡은 뒤부터 마을에 밤나무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밤밭’이라고 불렀고, 지금의 율전(栗-밤 율, 田-밭 전)동은 바로 밤밭을 한자로 쓴 것이다. [벽적골] '벽적골'이라는 이름은 여주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벽돌을 구워 가면서 살았다고 해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링크수원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