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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서(朴淵瑞) = 박본연서(朴本淵瑞)

출생일: 1893.12.27 사망일: 1950.09.19 행위분야: 군인 인물경력 - 1908년 7월 경성 보성소학교, 1910년 3월 개성 보창학교 졸업 - 1917년 6월 피어선성경학교, 1928년 1월 감리교의 협성신학교 졸업 - 1919년 8월 철원지역 비밀결사 대한독립애국단 활동 중 체포돼 1920년 12월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 1923년 9월 목사안수. 1924년 8월까지 포천구역 담임 - 1924년 9월 장감연합공의회 주관으로 일본 간사이(關西) 선교사 파견 후 1927년 8월 귀국. 9월 잠시 경성 석교교회를 담임 - 이때부터 기독신보 주필을 맡아 김춘배(金春培)•최경식(崔京植) 등과 함께 1933년까지 편집 담당 - 1933-1942년 석교교회 담임. 1941년 3월 ‘신체제의 조선감리교단’으로 변경된 총회에서 중앙위원 전도주임, 4월 기독교조선감리교단 경성교구장에 임명 친일행적 - 1937년 8월 조선총독부 사회교육과 주최 시국강연반에 참여. 같은 해 9월 조선총독부 학무국 주최 제2차 시국강연반에 참여해 경기지역 강연 - 1938년 4월 종교단체연합회 주최 ‘총후보국 대강연회’에 기독교계 대표 연사로 참여. 같은 해 5월 조선기독교연합회 출범 시 평의원. 10월 ‘기독교도의 전쟁협력 강도(講道)’에 연사로 참여. ‘국민정신총동원과 기독교회’라는 제목으로 연설 - 1940년 9월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 10월 선전주임 겸임 - 1941년 3월 ‘국민총력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시국대응 신도대회’에서 ‘신학교육에서 유태 역사와 서양 사상의 배제’라는 제목으로 강연. 4월 정동예배당에서 경성교구 주최 천장절 봉축예배를 집례하고 봉축사를 함. 10월 국민총력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선전주임 겸임 - 1942-1944년 경성 중앙교회를 담임. 1942년 4월 조선기독교연합회 재무위원으로 활동. 기독교신문협회 부회장 겸 이사와 기독교신문의 편집인에 선임. 9월 일본기독교단 통리 도미타(富田滿)의 내방을 계기로 조선호텔에서 개최한 ‘기독교의 일본화급무’라는 주제의 좌담회에 참석 - 1942년 9월 16일자 기독교신문에 「경축 만주국 건국 10년」이라는 사설을 게재. 10월 기독교조선감리교단 경성교구장에 재임 - 1943년 4월 전필순(全弼淳) 목사를 통리로 하는 일본기독교 조선혁신교단 전도국장을 맡음. 10월 일본기독교 조선감리교단 이사 겸 경성교구장을 겸임 - 1945년 7월 개신교 교파를 통합 조직한 일본기독교 조선교단 연성국장을 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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