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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집(金泰潗) = 금정태집(金井泰潗)

출생일: 1888.09.21 사망일: 1947.10.08 행위분야: 중추원 인물경력 - 1909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경제과에서 수학. - 통신관리국 통신주사로 있다가 금융조합•경성방직주식회사 등에서 근무. - 1928년 3월 경기도 시흥청년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회장을 맡음. - 1935년 2월부터 경충(京忠)버스주식회사 취체역, 1936년 11월 경성중앙도매시장 개설조사위원, 1938년 7월부터 중앙주조(酒造)주식회사 취체역, 1941년 9월 감사역을 맡음. 1938년 9월 주식회사 풍림(豐林)철공소 취체역, 1939년 2월 경성철공공업조합 이사를 맡음. 친일행적 - 1926년 11월과 1929년 11월 영등포 면협의회원을 거쳐, 1931년 5월과 1935년 5월 영등포읍회의원에 당선. - 1927년 4월과 1930년 4월 민선으로 경기도 도평의회원에 선임된 이래, 1933년 5월, 1937년 5월, 1941년 5월 계속해서 관선으로 경기도 도회의원에 선임. - 1928년 11월 쇼와(昭和)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음. - 1933년 4월 시흥국방의회 부회장, 1935년 7월 시흥군학교비평의회원에 당선. - 1934년 9월부터 1936년 3월까지 영등포세무서 소득조사위원. - 1936년 9월 경성부 부회의원 증원선거에 출마해 당선. - 1936년 11월 전쟁 가능성이 점차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최린(崔麟)•이진호(李軫鎬)등 총 29명과 함께 부민관에 모여 발기인회를 개최하고 비상시국을 맞이해서 조선에도 징병제도를 실시하라는 요망 운동을 전개. - 1937년 6월 경성부 제2부 교육부회 상임위원을 맡음. 경성부회의원으로 있으면서 1938년 5월 만주 및 북지(北支)를 시찰하고 돌아왔으며, 7월에 국민정신총동원 경기도연맹 참여(參與)로 선출. 이 해에 조선실업구락부 회원으로 활동. - 1939년 5월과 1943년 5월 계속해서 경성부 부회의원에 선임. - 1940년 10월 국민총력 경기도연맹 평의원 및 국민총력 경성연맹 평의원에 선임. - 1941년 9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경성)으로 참여. - 1942년 6월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주임관대우 참의에 임명되어 1945년 6월까지 재임하면서 매년 600원의 수당을 받음. 중추원 참의로 있던 1942년 11월 영등포 사법보호위원회 고문으로 활동. - 1943년 11월 경성부 영등포임시특별지원익찬회 위원장으로 지원병 지원 격려 활동. 1944년 11월 경기도 미곡공출강연회 양주 지역 연사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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