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일: 1855.06.05
사망일: 1937.12.03
행위분야: 기타
인물경력
- 1891년 생원시에 합격.
- 1896년 2월 춘천부 참서관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춘천재판소 검사를 겸임. 1897년 독립협회에 보조금을 냄.
- 1905년 11월부터 1906년 7월까지 내부 회계국장을 지냄.
- 1906년 7월 내부 지방국장에 임명되어 내부 치도국장을 겸임. 같은 해 8월부터 1907년 6월까지 함경남도관찰사를, 1907년 4월 함경남도재판소 판사를 겸임. 같은 해 6월 중추원 찬의에 임명, 7월 함경남도관찰사와 함경남도재판소 판사에서 해임.
- 1908년 1월 대한협회가 설립되자 찬무원과 회원으로 활동했고, 같은 해 기호흥학회 찬무원으로 활동, 7월에는 관동학회 부회장으로 선출되는 등 계몽운동에 참여.
- 1908년 9월 국조보감 편집위원, 12월 국조보감 선사위원(繕寫委員), 1909년 2월 국조보감 감인위원(監印委員)을 역임. 4월 규장각 부제학에 임명.
- 1910년 7월 한국평화협회 재무부장을 맡음.
- 1911년 7월 박영효•김가진을 주축으로 여규형•윤희구 등과 함께 문예구락부(文藝俱樂部)를 조직하고 평의원을 맡음.
친일행적
- 1908년 2월 친일 유교단체인 대동학회에 참여하여 지방총무와 평의원을 맡음.
- 1909년 4, 5월 경성일보사가 주최한 일본관광단에 참가해 일본을 다녀옴. 7월 강원도선유사로 파견되어 의병 진무(鎭撫). 같은 해 9월 신궁봉경회에서 분리된 신궁경의회(神宮敬義會) 부회장을 맡음. 신궁경의회는 1909년 6월 조선에 신궁을 세워 제사를 지내자는 취지로 발족한 신궁봉경회가 내분을 겪으면서 그해 8월 분리되어 나온 단체로, 단군과 일본 진무(神武)천황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신도(神道) 의식을 거행한다는 취지로 조직. 처음 결성했을 때는 신궁봉경회에 합동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이후 신궁봉경회와는 별도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추도회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 10월 신궁경의회 부회장으로 이토를 추도하며 「근조 고 공작 이토 히로부미 태사전하(謹弔故公爵伊藤太師殿下)」를 지음. 12월 일진회가 청원한 ‘합방론’에 반대하며 이완용을 중심으로 국민대연설회를 열었는데, 이때 상서문(上書文) 제출위원으로 위촉.
- 1912년 3월 조선총독부 직속기구인 경학원의 강원도 강사에 임명되어 1929년 9월까지 활동. 같은 해 조선인 고관들과 총독부 관료들이 모여 조직한 이문회(以文會)에 가입해 20년 가까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편의 한시를 지음.
- 1914년 4월 경학원 강사로 구성된 다이쇼(大正)박람회 시찰단에 참여.
-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을, 1915년 11월 다이쇼(大正)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음.
- 1915년 11월 다이쇼천황의 즉위대례식 헌송문을 지어 조선총독부에 헌상, 일본 천황의 덕을 칭송하고 황가(皇家)의 오랜 적통(嫡統)을 이은 것을 찬양하였으며 일본의 부강함과 융성함을 기원하는 내용. 이 시문(詩文)은 1915년 12월호 경학원잡지에 수록.
- 1916년 11월에는 일본 황태자의 즉위를 축하하는 「입태자례헌송문(立太子禮獻頌文)」을 지어 총독부에 헌상(경학원잡지 1916년 12월호). 시문에 이르기를 “천추토록 영원하길 만세 부르매 장수함은 남산과 같기를 축원하누나(萬歲千秋 壽南山而拜獻).”라고 함.
- 1920년 1월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온 유림들이 조선총독부의 경제적 보조를 받아 조직한 유도진흥회(儒道振興會)의 부회장을 맡음.
- 1928년 11월 쇼와(昭和)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음.
- 1929년 9월 경학원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1931년 명륜학원 평의원, 1932년 9월 조선유교회 명리원 법정을 맡음.
- 1935년 일제가 ‘심전개발(心田開發)’ 정책을 시행하자, 경학원이 개최한 심전개발에 관한 간담회에 참석해 ‘심전개발에 관한 3조항’을 결의., 이어 경학원잡지 1936년 8월호에 일제의 심전개발 정책을 지지하는 「심전개발에 대한 유교」라는 글을 발표. 심전개발 정책은 일제가 국가의식과 사회공동체 의식의 함양을 통해 ‘충량한 황국신민화’를 꾀하려는 이데올로기 정책. 1935년 10월 시정25주년기념표창을 받음.
- 1936년 1월 경학원 대제학 겸 명륜학원 총재에 임명.
- 1937년 경학원 장기근속자로 표창. 같은 해 8월 중일전쟁 개전과 관련한 조선총독부 주최 시국간담회에 참석. 같은 달 전쟁에 참전하는 ‘황군(皇軍)’을 위해 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