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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헌표(洪憲杓) = 덕산가일(德山嘉一)

출생일: 1906.08.23 사망일: 1966.04.20 행위분야: 관리 인물경력 - 1930년 3월 일본 교토(京都)제삼고등학교를 졸업 후, 같은 해 4월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해 1933년 3월 졸업. - 1933년 8월 조선총독부 재무국 사계과(司計課) 속에 임명되어 관료생활을 시작. - 조선총독부 재무국 사계과 속으로 근무하던 중 1934년 10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합격. 친일행적 - 1936년 6월 고등관 7등의 군수로 승진해 평안남도 강서군수로 부임, 1938년 6월 고등관 6등으로 승급. - 1939년 12월 황민화운동의 전개를 목적으로 조직된 내선일체실천사(內鮮一體實踐社)의 평안남도지사 고문을 지냄. 강서군수 재직 당시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용물자 조달, 군수품 제조 공출, 각종 시국강연회와 좌담회 등을 통한 여론 환기, 국방사상 선전 보급, 국방헌금•애국기헌납자금•군사후원자금 모금 등 전시(戰時) 업무를 수행해서 지나사변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림. - 1940년 2월 고등관 6등의 이사관으로 승진해 평안남도 산업부 산업제2과장에 임명, 같은 해 7월 고등관 5등으로 승급. 평안남도 산업부 산업제2과장으로 근무 시 중일전쟁과 관련하여 전시 하에서 국내 주요 물자 및 물가에 대한 조정업무 수행. - 1941년 8월 평안남도 내무부 조정과장으로 옮겼으며, 1942년 9월 고등관 4등으로 승급. 1942년 12월 평안북도 산업부 산업부장으로 발령받았으며, 같은 달 평안북도 산업장려관 관장 겸 화하검사소(靴下檢査所) 소장을 겸임. 12월 정6위에 서위. - 평안북도 산업부 산업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1944년 10월부터 11월까지 「국민징용령」에 따른 징용자와 「국민근로보국협력령」에 따른 근로보국대원 등에 대한 지도 알선, 근로동원자의 가족과 유가족에 대한 원호사업 등을 목적으로 조직된 재단법인 조선근로동원원호회(朝鮮勤勞動員援護會)의 평안북도지부 이사를 지냄. - 1944년 11월 고등관 4등의 사무관으로 승진해 함경북도 재무부 재무부장 부임. - 1945년 1월 조선금융조합연합회 함경북도지부 감리관, 2월 전시손해보험조사위원을 겸임. 3월 고등관 3등으로 승급, 5월 함경북도 농상부 농상부장으로 옮겨 해방될때까지 재직. 5월 조선식량영단 함경북도 지부 감리관을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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