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일: 1896.08.14
사망일: 1989.08.14
행위분야: 법조인
인물경력
- 1909년 3월 한성 보광학교(普光學校)에서 수학한 후 1910년 3월 사립 중동학교(中東學校) 졸업.
- 1912년 3월 일본인이 세운 불교고등학원(佛敎高等學院) 예비과 수료. 다음 달 보성전문학교 법률학과에 입학해 1915년 3월 졸업. 졸업하던 해 4월 일본으로 건너가 다음 해 7월까지 와세다(早稻田)대학 고등예과 문과를 수료. 두 달 후인 9월 와세다대학 문학부 사학급사회학과(史學及社會學科)에 들어가 1919년 7월 졸업. 처음에는 서양사를 전공하고자 했으나, 당시 일본사의 권위자였던 요시다 도오고(吉田東伍)와 쓰다 소우기치(津田左右吉)의 영향을 받아 조선사연구로 방향을 전환.
- 1919년 10월부터 1925년 8월까지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원을 지냄.
- 1920년 7월 김억(金億)•나혜석(羅蕙錫)•염상섭(廉想涉) 등과 잡지 폐허를 창간한 후 동인으로 활동.
- 1922년 12월에는 염상섭•오상순(吳相淳) 등과 문인회(文人會)를 발기해 창립.
- 1933년 4월부터 1943년까지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로서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를 강의. 1934년 5월 진단학회(震檀學會)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학회 창립과 함께 상무위원에 선임되었고, 학회지 진단학보(震檀學報)의 편집위원(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음. 1936년 6월에는 진단학회 위원을 맡음.
- 1941년 4월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로 1943년까지 사학강좌(史學講座)를 담당.
친일행적
- 1925년 8월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修史官補)에 임명. 1927년 5월 수사관보를 그만두고 촉탁을 맡아 1938년 6월경까지 활동. 조선사편수회는 1925년 6월 조선 사료의 수집, 편찬 및 조선사의 편수를 담당하기 위해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조선총독부 직속기구로, 조선사(朝鮮史) 편찬 등을 통해 식민사학을 집대성하는 역할을 담당.
- 조선사편수회 촉탁으로 활동하면서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함께 조선사 제1편 「신라통일 이전」, 제2편 「신라통일시대」, 제3편 「고려시대」의 편찬을 담당. 수사관보로 재직하던 1926년 1월 조선사편수회 소속 학자들의 공동 연구기관인 조선사학동고회(朝鮮史學同攷會)의 편찬원을 맡음.
- 1930년 8월부터 1939년 10월까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와 조선총독부•조선사편수회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청구학회(靑丘學會) 위원을 지냄. 청구학회는 조선과 만주를 중심으로 한 극동문화 연구를 표방하며 조직한 학술연구단체로, 최남선(崔南善)•이능화(李能和)•신석호(申奭鎬) 등이 참여했으며, 청구학총(靑丘學叢)을 발간.
-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전국 유림단체를 연합하여 총후봉공(銃後奉公)을 위한 정신운동에 나서도록 촉구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 평의원에 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