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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종(李台鍾) = 궁본태종(宮本台鍾)

출생일: 1899.06 사망일: 1944.11.27 행위분야: 관리 인물경력 - 1922년 수원고등농림학교 졸업. - 1926년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기수(技手)에 임명되어 1929년까지 근무. - 1930년 수원고등농림학교 조교수에 발탁. 1936년 4월 수원고등농림학교 교수로 특별 승진한 후 퇴임. - 1936년 이후 만주국 젠다오성(間島省) 농림학교 부교장에 임명되었고, 1939년 7월 공립국민고등학교장(천임관 3등)으로 승진해 젠다오성 옌지(延吉)국민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 그해 11월 민생부 교육사(敎育司) 편심관(編審官)에 발탁. 친일행적 - 1940년 7월 교학관으로 진급하여 민생부 교육사에서 계속 근무. 같은 달 훈6위 주국장(柱國章)을, 11월 건국신묘창건기념장(建國神廟創建紀念章)을 받음. - 1940년 10월 만주국 수도 신징(新京)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협화회 조직인 수도계림분회(首都鷄林分會) 전체임원회의에서 참여(參與)에 선출. 수도계림분회는 이범익(李範益)•최남선(崔南善)•박석윤(朴錫胤) 등을 고문으로 두고 국무원에서 재직하고 있는 중견 관료와 조선인 유지들로 구성되었으며 국방헌금과 위문대(慰問袋) 헌납, 직업보도(職業輔導), 이민 안내 등의 사업을 전개. 만주국 협화회는 1932년 7월 일본 관동군의 지도와 구상 아래 ‘민족협화(民族協和)’의 기치를 내걸고 ‘만주국의 건국정신을 구현할 전 만주의 유일한 사상적•교화적•정치적 실천단체’를 표방하며 설립. 각지에 분회를 조직해 만주국 지배체제 안으로 민중을 끌어들이면서 항일운동에 대한 내부교란과 파괴공작, 선전선무공작을 수행하는 한편 전시동원조직으로서 역할을 담당. - 1940년 12월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東南地區特別工作後援會)에 의연금을 기부.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는 동만주 일대에서 항전하고 있던 항일유격대를 귀순•투항시키기 위해 1940년 10월 30일 신징에 설립해 12월 20일까지 존속한 친일조직. 만주의 대표적 친일파인 박석윤과 윤상필(尹相弼) 등이 총무를 맡아 사업을 주도했고, 이범익•최남선 등이 고문을 맡음. 만주 전 지역에 50개소의 지부를 설치하고 “① 귀순권고(전단•방송), ② 일만군경에 대한 위문, ③ 귀순자에 대한 보도(輔導), ④ 주민에 대한 안정(安靖)”이라는 ‘동남지구특별공작요령’을 선전했으며 11월, 12월 두달 동안 후원성금 15만 4157원을 모금해 옌지현(延吉縣) 명월구(明月溝)에 위치한 소노베(園部)부대(간도특설대의 별칭)에 헌납. - 1944년 5월 만주국 교학관을 사직했고,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京城拓殖經濟專門學校 : 보성전문학교를 전시교육체계에 맞게 재편한 학교) 교수로 초빙되어 경성으로 되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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