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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억(韓相億)

출생일: 1898.12.10 사망일: 1949.12.10 행위분야: 조선귀족 인물경력 - 남작 한창수(韓昌洙)의 서자. 1922년 독일에서 2년간 유학하고 스위스로 건너가 취리히대학 경제과에서 수학. 1927년경 취리히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기록됨. - 1934년 4월 미개간지 간척과 영농을 목적으로 하는 동해농업회사(東海農業會社)를 설립하고 대표취체역에 취임해 해방될 때까지 중임(重任). - 1937년 6월 경기도농회에서 조사한 경기도내 논밭 30정보(町步) 이상을 소유한 지주로서 안성에 논밭 74정보, 소작인이 150명에 달함. - 1937년 12월 부동산 매매와 금융업을 목적으로 하는 합자회사 영전사(永全社)를 설립하고 대표에 취임. 친일행적 - 한창수의 남작 작위를 승계한 이복형 한상기(韓相琦)가 1934년 6월 부친 성묘를 갔다가 사고로 사망하자, 사후양자(死後養子)로 입적해 8월에 호주를 상속. - 1935년 1월 종5위에 서위되면서 형제로서 2대째 작위를 이어 받음. 같은 해 2월 조선실업구락부(朝鮮實業俱樂部) 회원으로 활동. - 1937년 8월 동요회(同耀會) 발기인회에 참석해 이사에 선출된 후 간부들과 함께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참배하고 황군(皇軍)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 같은 해 9월에는 동요회 이사장 이병길(李丙吉 : 후작), 이사 이홍묵(李鴻默 : 자작)•박부양(朴富陽 : 자작)•김호규(金虎圭 : 자작) 등과 함께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를 방문하고 명문가와 귀족 집안을 돌며 모은 국방헌금 1만 원을 헌납. 동요회는 조선 귀족들이 중일전쟁 직후 시국에 대한 내선(內鮮)의 총후(銃後)를 결속하기 위해 ① 시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 ② 총후의 후원운동 등을 통한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실현, ③ 동양평화 의 실현, ④ 황운부익(皇運扶翼)에 적성(赤誠) 등을 목적으로 조직. -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전국 유림단체를 연합해 총후봉공을 위한 정신운동에 나서도록 촉구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의 참사(參事)에 선임. - 1940년 11월 열린 기원2600년축전 기념식전 및 봉축회에 초대받고 기원2600년축전기념장을 받음. - 1941년 9월 임전 태세의 정비•강화를 위해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지도로 임전대책협력회와 흥아보국단을 통합해 조직한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의 경성지역 발기인으로 참여. 1941년 2월 정5위에 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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