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와 불꽃 ; 원심창이야기 ; 평택인물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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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
발행/출판처
  • 평택문화원
생산일
  • 2018-12-30
기록물유형
도서간행물류
기록물형태
단행본
언어
  • 한국어
식별번호
DC2020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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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평택은 일제가 광포하다고 할 만큼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고장이며, 3.1운동을 비롯해서 지속적으로 민족운동에 참여하였고, 여러 민족 운동가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평택을 빛낸 인물을 되짚어보는 일은 지역의 역사 연구 기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평택의 역사 인물 발간사업은 지역사의 체계화 뿐만 아니라 시민과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평택 시민으로서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시켜 줄 수 있습니다.
《평택인물지5-원심창이야기 ‘심지와 불꽃’》은 원심창 의사에 대한 인물지로 인간 해방의 심지로 자라 자주독립의 불꽃을 키우고, 평화 통일의 노둣돌로 살았던 원심창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팽성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후 일본과 중국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특히 육삼정 의거의 주역인 자랑스러운 평택의 민족운동가입니다. 원심창 의사의 생애 뿐만 아니라 그의 민족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역:

주제:

  • 인물과성씨
  • 인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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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보기

저자이야기 왜 원심창인가?  12
Ⅰ. 세상의 심장으로 가보고 싶다 22
Ⅱ. 일본에서의 원심창, “자유에 대한 억압에서 해방하라” 26
왜 일본으로 갔나
원심창, 흑우회 가입한 시점과 이유
흑우회, 계몽운동 단체에서 행동단체로 전환하다
정칙영어학원 출신을 통해 마주한 원심창과 박열
원심창, 도쿄 조선 무산학생 학우회 위원(1925.5.24)이 되다
도쿄조선무산자동맹 교양부 집행위원(1925.11)으로
원심창, 흑우회 재건을 주도하다(1926.1)
흑색운동사(1926.5)의 원심창, 첫 번째로 검거되다
원심창, 가네코후미코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다(1926.7.23)
흑색전선연맹(1926.10)에서 2기 불령사(1926.12)로
원심창의 흑풍회(1927.2), 무산자와 함께 하다
원심창은 왜 민족협동전선(신간회)을 배척하였나?
원심창의 흑우연맹(1928.1), 과격해지다
동족끼리 대립하는 것은 무용하다는 깨달음(1929)
『흑색신문』을 창간하다(1930.7.22)
Ⅲ. 중국에서의 원심창, “나는 이제 민족해방의 심지다” 55
상하이에서 남화한인연맹원으로(1931.6)
남화한인청년연맹 건설(1930.4)
원심창, 사회혁명을 넘어 항일 민족혁명을 꿈꾸다(1931.6)
항일구국연맹과 흑색공포단 결성(1931.11.30)
원심창과 흑색공포단의 관계
항일구국연맹,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대하다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정보수집과 선전활동을 주도하다
백정기와 이강훈, 두 동지를 만나다
남화한인청년연맹 재건을 위한 몸부림
원심창의 톈진 작전(1932.12)
아리요시 아키라 공사의 부임
원심창, 아리요시 처단 계획과 영사관 경찰의 역공작
원심창, 흑색공포단원을 소집하다(1933.3.5)
거사자를 뽑다(1933.3.6)
일본 영사관 경찰의 공작이 시작되다(제2차 1933.3.6과 제3차 1933.3.9)
거사자의 사진을 찍다(1933.3.12)
원심창, 육삼정 인근을 조사하다
3월 13일, 제2차 현장답사와 거사 계획 마무리
마지막 회의(1933.3.16)
실제의 계획에 들어가면
운명의 날(1933.3.17)
일본 경찰의 잠복과 삼의사의 체포
원심창이 체포 직전 송강춘에서 내려온 이유
나가사키 지방재판소로 간 원심창
11월 24일 무기징역을 선고받다
동지여 잘 가라


Ⅳ. 해방 후의 원심창, “자유와 민족의 기로에서” 124
드디어 출소하다
원심창,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중앙회 선전대원이 되다
재일조선인연맹(조련) 결성, 아직은 민족협동전선. 그러나…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건청), 친일 반공세력이 뭉치다
조련과 박열 그리고 이강훈
신조선건설동맹(건동)의 시동, 민족해방의 목마름
박열과 동지들이 원심창을 부르다
원심창, 좌우에 치우치지 않다
건동, 좌우대립의 기로에 서다(1947.2)
신조선건설동맹 부위원장 원심창(1946.2.8 ~ 1946.10.3)
독립노동당에 가입한 원심창(1946.6.6.)
민단 초대 사무총장 원심창(1946.10.3 ~ 1948.10.4)
청산분자라는 비판에 독립운동가의 자존심이 상하다
독립운동가의 건동이 무슨 이유로 친일 세력의 건청과 제휴했나
조련과 민단의 갈등 고조
제2대, 제3대 민단 사무총장 원심창(1947.5.24 ~ 1948.10.4)
원심창, 조선민주통일동지회에 가지 않고 민단에 남다
분단과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다(1948.10)
민단 부단장 원심창(1949.4.1 ~ 1950.4.2), 재외국민등록을 반대하다
원심창, 대한민국 인정하고 재외국민등록 추진하다(1949.11)
민단이 의용군 파견을 결정하다
원심창이 의용군 파견에 최선을 다한 이유
원심창, 의용군의 귀환에 힘쓰다
원심창, 민단 단장이 되다(1951.4)
전재민원호사업위원회 위원장 원심창(1951.7)
한국정부의 영주권 협상, 재일동포 중에서 자기편 찾기
원심창의 영주권 부여론이 가지는 이상과 현실

Ⅴ. 통일운동가 원심창, “내 영혼 통일에 묻어” 195
도쿄지부 민단장 원심창, 북한이 보낸 ‘호소문’을 받다
원심창, 남북통일운동준비위원회(1954.12.5)를 결성하다
남북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 대회(1955.1.30), 출신을 잊고 미래를 향하다
원심창, 민단이 저지른 폭력사건을 우려하다
원심창, 중앙 대표위원 겸 사무국장이 되다(1955.1.31)
원심창, 섭외위원이 되다(1955.2.7)
원심창, 3·1절 기념 중앙대회에서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다
원심창, 남북통일촉진서명운동(1955.4.10 ~ 8.10)을 주관하다
평화적남북통일촉진·원자전쟁반대 서명추진중앙위원회 의장이 되다(1955.5.16)
한반도에서 외국군 철수를 결의하다(1955.6.24.)
6·25기념평화제와 통협의 쇠퇴
해방10주년 경축행사 초대에 응한 원심창(1955.7.12)
조선통일문제연구소 설립(1958.9)과 통일일보 발간(1959.1.1)
원심창의 통일론
한일협정 전야의 민단 그리고 원심창의 재일동포 민주화 의지
한국민족자주통일동맹(1965.7) 결성과 한일협정 비판
원심창의 유산, 재일동포 법적지위 향상이라는 머나먼 길
대행사에 묻힌 원심창, 꿈은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고

Ⅵ. 정리와 결론 244
1. 원심창 의사 알아보기, 백문백답
2. 에필로그 : 인내와 포용이 만든 의로운 선택

참고문헌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