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일: 1914
사망일: 1994.11
행위분야: 예술인
인물경력
- 일본 메이지(明治)대학을 나와 193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막 희곡 「유민(流民)」이 당선돼 등단.
친일행적
- 1939년 6월 안기석•이서•이화삼•박학•이백산 등과 함께 친일연극을 표방한 극단 협동예술좌를 만들면서 연극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섬. 협동예술좌는 결성 당시 ‘신극단체의 대동단결과 극단의 경제문제 해결 및 국민정신을 실천적으로 파악한 국민예술가로서의 활동’을 목적으로 표방함. 당시 언론보도에서는 “협예(협동예술좌)는 그들의 선언과 같이 스스로 금일의 시국과 정세를 가장 충분히 인식하고, 나아가서는 이 같은 시국과 정세에 가장 적합한 연극부대로서 확호한 슬로건과 기치를 선두에 내걸고 행진을 선언한 신집단이었다. …… 모든 과거의 주의나 주장을 깨끗이 포기하고 다만 제국신민으로서의 시대적 인식을 공고히 하고 동시에, 여기에 상응한 각본을 준비하 협동예술좌는 동양지광사를 주재하던 박희도의 전격적인 후원 아래 결성.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박희도는 일문 종합지 동양지광을 창간하여 황민화 운동에 앞장 선 인물. 김승구는 협동예술좌의 창립 공연 작품 「동풍」(「울부짖는
중국」의 번안)을 집필.
- 1941년 3월 결성된 극작가동호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1943년 2월 자신이 쓰고 연출한 가극 「춘향전」을 반도가극단을 통해 공연. 그해 11월 부여신궁어조영(夫餘神宮御造營)의 문화인봉사대(文化人奉仕隊)에 동원되어 활동. 이후 본격적인 친일 연극 창작에 나서 1943년 11월 현대극장과 약초극장에서 공연된 「로나부인 행장기」(ロナ夫人行狀記)의 대본을 씀. 이 작품은 일본어로 창작된 이른바 ‘국어극’. 조선연극문화협회는 1943년 4월부터 경무과의 지도와 명령에 따라 부(府) 이상의 도시에서 공연되는 작품 중 삼분의 일 이상은 일본어로 쓰인 국어극을 공연하도록 조치했고, 이어 10월에는 국어극 연구부를 설치하여 다가올 일본어 상용화에 대비. 「로나부인 행장기」는 이러한 지도와 명령에 따라 창작된 작품. 1944년에는 「화전지대」를 집필하여 안영일의 연출로 공연.
- 대표 작품인 「산하유정(山河有情)」은 조선총독부 정보과에서 주관하고 조선연극문화협회가 국민총력조선연맹과 매일신보사•경성일보사의 후원을 받아 주최한 관제 행사인 제3회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단체상(조선총독상)과 작품상을 받음. 극단 아랑이 안영일 연출로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1945년 2월 중앙극장에서 초연, 연극경연대회 총독상 수상을 기념하여 4월에 재공연. 3막 4장으로 구성된 「산하유정」의 내용은 제목처럼 조국 산하에 흐르는 따뜻한 인정을 다루고 있으나 작품 속 출정군인 다나카 긴타로(田中金太郞) 부자가 조선인에게 보여준 온정이 작품 전체를 묶어내는 중심 틀로 작용하면서 신체제 국민의식을 고양시키는 목적을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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