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내용
(전면) 積城面長姜漢榮頌德碑
自公棘栖 民安業務 勸農勸學 富矣敎之 際時非常 不煩不擾 漢之永 矣 澤流芳兮
(후면) 내용 없음
풀이
(전면) 적성면장 강한영 송덕비
스스로 낮은 자리에 처하여 민(民)을 편안케 함을 업무로 삼았고 농업을 권하고 부유하게 했고, 학문을 장려하여 가르쳤네. 비상한 때를 만났을 땐 번거롭거나 어지럽지 않게 했네. 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못물은 향기롭네.
설명
이 비석은 1923년 11월부터 연천군 적성면장으로 장기 재직한 강한영(창씨명 渭川榮, 1893~?)의 15년 근속을 기념하여 그간의 공적을 새겨 적성면민의 이름으로 1939년 10월에 세운 송덕비이다. 연천군 적성면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군정법령 제22호에 따라 파주군으로 편입되었다. 그는 중일전쟁 때 군용물자조달, 군수품 제조공출, 국내물가조정 및 생산확충, 자원개발, 국방헌 금 및 애국기 헌납 자금 모집 등의 업무에 종사한 공로로 일제의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에 이 름이 올랐다. 또한 연천군 지역에 이른바 ‘1면 1신사(一面一神祠)’ 계획에 따라 1940년 9월 25일 부로 신메이신사(神明神祠, 적성신사)의 설립허가를 받을 당시 대표원출자(代表願出者)로 참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