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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치산치수지비 = 治山治水之碑

비문내용 (전면) 治山治水之碑 京畿道知事 甘蔗義邦書 (우측) 水原ノ名ハ古來八達山中ニ靈泉湧出スルニ緣由スト 宜ナル哉此ノ地ハ八達山/ ヲ中心トシ西ニ西湖北ニ北池東ニ水原川ノ流ヲ擁シ水利灌漑ノ便夙ニ拓ケ眞エ/ 其ノ地名ニ應シキ豊穰ノ沃野ナリキ 然ルニ其ノ水源ヲ爲ス光敎山彙一帶ノ鬱/ 蒼タル森林ハ何時シカ荒廢シ始政當時ハ旣ニ林相ノ見ルベキモノ無ク其ノ後人/ 爲竝ニ天然ノ被害交々臻リ燃料ノ缺乏ハ更ニ是ニ拍車ヲ加ヘ昭和ノ初期ニ至リ/ テハ全山荒涼タル禿山ト化シ流出土砂ハ年々河床ヲ高メ水路ヲ塞ギ亂流ヲ誘發/ シ洪水每ニ可惜美田ハ變シテ荒蕪地ト化シ其ノ慘害底止スル處ヲ知ラザル狀態/ (후면) ニ立到レリ 官ニ於テハ玆ニ鑑ミル所アリ昭和六年四月砂防事業ヲ此ノ地ニ起/ 工セラル 爾來昭和九年度迄四ケ年ニ亘リ日旺半月水原一邑二面十七ケ町里ニ/ 跨リ林野面積二千九十五陌ニ對シ工費十二萬四千四百五十一圓ヲ以テ三百二十/ 五陌ノ砂防工事竝百四十一萬本ノ植樹造林ヲ行ヒ同時ニ一帶ノ林野ハ之ヲ保安/ 林ニ編入セラレ 一方日旺面ニ在ルテハ官ノ治山事業ト呼應シ昭和十一年度ヨ/ リ三ケ年繼續事業トシテ總工費一萬二千圓內道費補助金五千圓ノ下付ヲ受ケ梨/ 木里地先ヨリ西湖入口ニ至ル區間ノ亂流整理ヲ企畫シ延長三千米ノ堤防及十三/ ケ所ノ床固工ヲ築設シ昭和十四年三月之ヲ竣成セリ/ 斯クテ此ノ地域ニ於ケル治山治水ノ基礎工作漸ク完成シ住民ハ玆ニ積年ノ災/ 禍ヨリ免カレ安居樂業ノ喜ヲ得ルニ至リタリト雖所期ノ效果ヲ益々發揚セムガ/ 爲ニハ一ニ今後森林愛護ノ徹底ト經營ノ合理化ニ俟ツノ要切ナルモノアリ玆ヲ/ 以テ關係者相寄リ昭和十四年六月日旺砂防林施業組合ヲ結成シ施業計畫ヲ確立/ シテ每年ノ施業ヲ定メ以テ覆轍ヲ踏ム虞ナカラムコトヲ期セリ/ 玆ニ吾等住民相謀リ砂防事業ノ完成ヲ祝福感謝シ倂テ其ノ由來ヲ記シ敢テ之/ ヲ後昆ニ傳フ/ 張斗柄 謹書/ (좌측) 昭和十四年十月一日/ 水原郡日旺面長 李奭來/ 水原郡水原邑長 梅原靜雄/ 日旺砂防林施業組合長 李弼商/ 東山農事株式會社 朝鮮支店/ 東洋拓植株式會社 京城支店/ 尹泰貞/ 車泰益/ 李鳳來/ 梁根煥/ 昭和十六年十月二十五日/ 水原郡日旺面長 廣吉秀俊 立/ 풀이 (전면) 치산치수지비 경기도지사 간자 요시쿠니(甘蔗義邦, 1891~?) 씀 (우측) 수원(水原)이란 이름은 예로부터 팔달산 속에 영천(靈泉)이 솟아오르는 용출하는데 에서 연유한다고 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땅은 팔달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 서호, 북쪽으로 북지, 동쪽으로 수원천의 흐름을 감싸며 수리 관개의 편의가 일찍 이 개척되어 진정 그 지명에 호응하여 풍요로운 옥야가 되었다. 그러나 그 수원(水 源)이 되는 광교산 일대의 울창한 산림은 언제나 황폐하여 시정 당시에는 이미 삼 림의 형태를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 후 사람들은 아울러 천연의 피해가 교대로 이 르고 연료의 결핍은 거듭하여, 여기에 박차를 가하여 쇼와(昭和) 초기에 이르러서 는 산 전체가 황량한 민둥산으로 변화하여 유출된 토사가 매년 하천 바닥을 높여 수로를 막고 난류(亂流)를 유발하여 홍수가 나니 매번 애석하게도 미전(美田)은 변 하여 황무지로 되고 그 참해를 저지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후면) 관에서는 이에 비추어 쇼와 6년(1931) 4월 사방사업을 북쪽 땅에 일으킨 이래 쇼와 9년(1934)에 이르는 4개년에 걸쳐 일왕(日旺)·반월(半月)·수원(水原)의 1읍 2면, 17개 정(町)과 리(里)에 걸쳐 임야면적 2,095 두렁에 대해 공사비 12만 4,451원으로 325 두렁의 사방공사를 합해 141만 그루(本)의 식수(植樹) 조림을 행하여 동시에 일 제의 임야는 이를 보안림으로 편입시키는 한편, 일왕면에 있어서는 관(官)의 치산 사업과 호응하여 쇼와 11년도(1936)로부터 3개년 계속사업으로 총 공사비 1만 2천 원 중 도비 보조금 5천원의 교부를 받아 이목리 땅에서부터 서호 입구에 달하는 구 간의 난류(亂流)정리를 기획하고, 연장 3천미터의 제방 및 13개소의 상고공(床固 工)을 축설하고 쇼와 14년(1939) 3월 이것을 준성(竣成)하였다. 이로써 이 지역에서는 치산치수의 기초공작이 점점 완성되고, 주민은 이에 이제까지의 재화(災禍)로부 터 면하여 안거낙업(安居樂業)의 기쁨을 얻기에 이르렀고, 비록 소기의 효과를 더 더욱 발양하기 위해서는 일에 금후 삼림수호의 철저와 경영의 합리화를 기다릴 필 요성이 있다. 이로써 관계자가 상기하여 쇼와 14년(1939) 6월 일왕사방림시업(施 業)조합을 결성하고 시업계획을 확립해서 매년 시업을 정함으로써, 전철을 밟을 우 려를 한 것을 기약하여 이에 우리 주민들이 서로 상의하여 사방사업의 완성을 축복 감사하고, 아울러 그 유래를 기록하고 감히 이것을 후손에게 전한다. 장두병 삼가 씀. (좌측) 쇼와14년 10일 1일 수원군일왕면장 이석래 수원군수원읍장 매원정웅 일왕사방임시업조합장 이필상 동산농사주식회사 조선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 윤태정, 차태익, 이봉래, 양근환 쇼와16년 10월 25일 수원군일왕면장 광길수준 세움 설명 이 비석은 수원 지역의 치산치수사업이 완료된 것을 기려 수원군 일왕면장이 주관하여 1941년 10월에 건립한 식민통치 미화 기념물이다. 전면의 ‘治山治水之碑’라는 글씨는 당시 경기도지사 간자 요시쿠니(甘蔗義邦)가 썼다. 장두병(張斗柄)이 쓴 후면의 비문은 1931년 이후 4개년에 걸쳐 광교산을 비롯한 수원 일대에 사 방공사와 식수조림사업을 벌이고, 다시 1936년 이후 3개년에 걸쳐 하천정비, 제방수축, 바닥다짐 공사 등을 시행한 내력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치산치수사업은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정책의 하나로 역점을 두어 시행한 것으로, 그 혜택은 비문에 나와 있듯이 동산농사주식회사와 동양척 식주식회사를 포함하여 이 지역에 대농장을 소유한 일본인 지주세력에게 돌아갔다. 비석의 건립은 당초 일왕사방림시업조합(조합장 이필상, 전 일형면장)의 결성을 계기로 이석래 일왕면장, 수원읍장 우메하라 시즈오(梅原靜雄), 동산농사 조선지점, 동양척식 경성지점 등의 명 의로 추진되어 1939년 10월 1일의 시점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었다가, 실제로는 2년이 지난 1941년 10월 25일에 제막이 완료되었다는 사실이 좌측면에 추각(追刻)되어 있다. 여기에 건 립자로 표시된 ‘히로요시 히데토시(廣吉秀俊)’는 이용택 일왕면장의 창씨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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