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내용
(전면) 水龍水利組合紀念碑
朝鮮總督府京畿道參與官京城帝國大學講師正五位勳三等魚允迪撰幷書
大哉水利之學也昔宋仁宗時鄕學太學皆以水利列於治民治兵算數之間胡安定先生 登治事齋而敎授之其置重於斯學顧何如而所由來亦已遠矣然我半島則距宋七百年 前新羅訖解王時已知水利之益其二十一年庚寅乃於金堤廣野之中築起六萬餘尺之 長堤爲一大貯水池開五渠灌漑萬結之地焉彼尙今泓渟凝碧之碧骨堤其非是歟今人 見水利組合之設多駭其新刱無前之制者一何不審之甚也益水利於土品能變瘠爲沃 於年事亦能回凶作豊矣近因人口之繁食糧日以告急而繼立産米增殖之案於是乎水 利組合蔚然興起本組合亦其一也其事業地以水原郡台章面之梅灘里莘里網浦里遠 川里勸善里機山里陳鴈里半月里及安龍面之泮亭里谷泮亭里爲根據又跨龍仁郡水 枝面之下里及器興面之靈德里其蒙利面積爲八百餘町步而五百八十餘町步則旣成 畓其餘皆雜種地也且其旣成畓之四分三專仰天雨是不有灌漑而可乎玆開麗川及新 垈二大貯水池設延長五里餘之東西兩榦溝又開二道之小溝九條之支渠以䟽其灌注 焉本組合設置則申請於大正九年認可於昭和二年八月二十七日起明年三月二十一/ 日起工是歲十日月三十日告竣而總工費四十八萬餘圓也本組合區域在水原龍仁故/ 名曰水龍名亦美矣哉歌曰
水兮龍兮 斯晋厥德 非水無禾 非禾艱食 我田有水/ 取禾則多 樂土何地 鼓腹而歌/ 昭和三年十二月建
(후면) 設立者 東山農事株式會社 代表者 中屋堯駿/ 東洋拓殖株式會社 同 加藤俊平/ 國 武合名會社 同 谷義治 洪敏燮 吳悳泳 吳性善/ 龍珠寺 代表者 姜大蓮
評議員 高木德治/ 國武合名會社 代表者 谷義治/ 高光業/ 金顯黙/ 東山農事株式會 社 代表者 中屋堯駿/ 吳悳泳/ 東洋拓殖株式會社 代表者 加藤俊平/ 吳性善/ 車裕 舜/ 梁聖寬/
水龍水利組合長 洪思勛/ 同 理事 從七位勳一等 小林五郞/ 同 書記 小田鉄太郞/ 顧 問 朝鮮總督府 水原郡守 正七位 森川源八
工事設計監督代行 朝鮮土地改良株式會社/ 技師長 正六位 淺野健一/ 現場主任 佐 藤信平
工事請負者 柴田組 柴田令五郞 (좌측) 建碑請負者 竹田多十郞
풀이
(전면) 수룡수리조합기념비
조선총독부 경기도참여관 경성제국대학강사 정오위 훈삼등 어윤적 짓고 씀 크도다 수리의 학문이여. 옛날 송나라 인종때에 향학과 태학에서 모두 수리학(水理 學)을 치민(治民)치병(治兵)산수(算數)와 함께 동렬로 보았는데, 호안정(胡安定) 선생은 치사재(治事齋)에 올라 그것을 가르쳤으니 그것은 유학(儒學)에서도 중요하 게 여긴 것이다. 돌아보면 어떠하며, 그 유래 또한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에서는 송나라 인종때와는 칠백 년의 시간이 떨어져있지만, 그전에 신라 흘해왕(訖 解王)때에 이미 수리의 유익함을 알고 있었다. 흘해왕 21년 경인(330년)에 김제의 넓은 평야 가운데에 6만여 척의 긴 제언[長堤]을 쌓아 하나의 큰 저수지를 만들었 으며 다섯 도랑을 열어 만 결(結)의 땅에 관개(灌漑)하였으니, 그것이 아마도 지금 의 홍정응벽(泓渟凝碧)의 벽골제(碧骨堤)가 아닌가 한다.
요즘 사람들이 수리조합을 설치하는 것을 보고 많이들 놀란다. 그 전에 없던 제도 를 새로 만들 것을 어찌 자세하게 살피지 않겠는가? 수리는 토품(土品)보다 유익해 서 척박한 토지를 비옥하게 변화시키고 연사(농사)에서도 흉년을 돌려서 풍년을 만 들 수 있다.
근래에는 인구가 번성하여 식량이 날로 위급함을 알림이 계속되어 산미증식의 계 획을 세웠는데, 이 때에 수리조합들이 울연히 흥기하였으니 본조합 또한 그중 하나 이다. 그 사업지역은 수원군 태장면의 매탄리·신리·망포리·원천리·권선리· 기산리·진안리·반월리 및 안룡면의 반정리·곡반정리를 근거로 삼고 군 경계를 넘어 용인군 수지면의 하리 및 기흥면의 영덕리를 포함하였다.
그 몽리(蒙利)면적은 800여 정보이나 그중 580여 정보는 이미 만들어진 논이고, 그 나머지는 잡종지였다. 또한 이미 만들어진 논의 4분의 3은 오로지 하늘의 비를 기다리는 것(천수답)으로 관개가 있지 아니하였으니 가하겠는가? 이에 여천(麗川) 및 신대(新垈)의 두 개 큰 저수지를 열어 연장 5리 남짓의 동서쪽 2개의 큰 물줄기 [榦溝]를 설치하였다. 또한 2개의 물길은 작은 도랑[小溝]과 9개의 작은 가지도랑 [支渠]을 열어 물을 통하게 하였다.
본조합의 설치는 대정 9년(1920)에 신청하였고 소화 2년(1927) 8월 27일 인가되었다. 해를 넘겨 다음 해(1928) 3월 21일 기공, 이해 11월 30일에 준공하여 총공사비 는 48만 여원이다. 본조합의 구역은 수원과 용인에 있기 때문에 ‘수용(水龍)’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름 또한 아름답도다. 노래하기를,
수원이여 용인이여! 나아가는 덕이여.
물이 아니면 벼(곡식)도 없고, 벼가 아니면 먹는 것이 곤란하네. 우리 논밭에는 물이 있으니 거두는 벼가 많도다.
낙토(樂土)는 어디인가? 배 두드리며 노래하네. 쇼와 3년(1928) 12월 건립하다.
(후면) 설립자
동산농사주식회사 대표자 중옥요준 동양척식주식회사 동 가등준평 국무합명회사 동 곡의치
홍민섭
오덕영
오성선
용주사 대표자 강대련 평의원
고목덕치 국무합명회사 대표자 곡의치 고광업 김현묵 동산농사주식회사 대표자 중옥요준 오덕영 동양척식주식회사 대표자 가등준평 오성선
차유순
양성관
수룡수리조합장 홍사훈
동 이사 종칠위 훈일등 소림오랑 동 서기 소전철태랑
고문 조선총독부 수원군수 정칠위 삼천원팔 공사설계감독대행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 기사장 정육위 천야건일
현장주임 좌등신평
공사청부자 시전조 시전영오랑 (좌측) 비석 건립 담당자 죽전다십랑
설명
‘수룡수리조합기념비’는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하리에 조성한 여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두 곳의 준공을 경축하기 위해 1928년 12월에 세운 식민통치 미화 기념물이다. 저수지 축조과정과 수리 조합 설치 연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비문은 경기도 참여관 어윤적(魚允迪)이 짓고 썼다. ‘수 룡’은 ‘수원’과 ‘용인’의 앞 글자를 딴 합성어이며, 이 비석은 지난 2013년에 수습되어 수원박물관 으로 옮겨졌다.
이 수리조합은 수원지역 일대에 대농장을 소유한 동산농사주식회사, 동양척식주식회사, 국무합 명회사, 용주사 등이 주도적인 설립자로 참여하여 1927년 8월 27일에 설치인가를 받았고, 조합장 에는 친일상공인인 홍사훈(洪思勛)이 임명되었다. 여기에 남아 있는 기념비는 일제강점기 식민 지 경제수탈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한편 이에 편승한 조선인 지주와 친일인사들의 면면을 알려 주는 역사교육자료의 하나이다.
비문에 등장하는 어윤적, 강대련(姜大蓮), 양성관(梁聖寬), 홍사훈 등 4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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