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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와 국가기록사진 속 경기도

남북대치와 군대
1970년대에는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북한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전북고창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같이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당시 세계의 냉전 완화 분위기에 따라 1970년에 박정희 대통령은 8.15 광복 25주년 기념식에서 “만약 북한이 몇 가지 전제조건을 수락한다면 단계적으로 남북을 가로막는 인공적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획기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을 할 용의가 있다”는 이른바 ‘8·15선언’을 공표하였다. 이 8·15선언은 한국 정부의 통일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8·15선언에 대한 북한의 초기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1971년 9월부터 11개월에 걸친 25번의 이산가족찾기를 위한 적십자 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한국 정부는 평양에 이후락을 보내어서 1972년 7월 4일, 박정희의 지시로 이후락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파견되어 김일성과 만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 제정하였다. 1972년 7월 4일 그 결과물인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는 국제적 데탕트 분위기와 주한미군 철수선언, 군비경쟁 축소를 위해 제정되었으나 이후 통일논의를 통해 남북 양측이 자국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이용되었다. 1972년 8월 29일,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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