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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삶 -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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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군 지평면 김문경

술 익는 마을의 추억담

“… 막걸리뿐이 아니지 우선 쌀 좋지, 물 좋지, 공기 좋지, 그러니 막걸리도 좋지…”
“… 배고팠던 그 시절엔,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었고, 특히 막걸리가 맛있을 수밖에 없었지…”

인생의 술, 지평막걸리

“옛날부터 지평양조장은 마을 유일의 술도가였고, 마을 사람들은 이 양조장에서 술을 받아다 먹었지… 일단 그 맛이 사람 입에 맞게 달짝지그레 한 것이… 맛있어. 오랜 시간 지평막걸리만 마셔서인지 다른 지역 술을 먹어봐도 입에 차지 않아.” 1947년 지평면에서 태어나 쭉 이 동네를 지키며 살아온 김문경 씨가 전하는 지평막걸리 예찬론이다. 지평면이 고향인 그에게 있어 ‘인생의 술’은 지평막걸리다. 생애 ‘첫 음주’ 또한 지평막걸리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막걸리를 만들고 남은 술지게미로 첫 취기를 경험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고, 늘 배가 고팠기에 쉬는시간, 점심시간이면 학교를 나와 바로 옆 지평양조장에서 널어놓은 술지게미를 몰래 훔쳐 먹었어. 술지게미에 취해 벌건 얼굴로 수업을 듣는 날이면 선생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어.” 지평양조장 바로 옆에 위치한 지평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막걸리 빚는 냄새를 맡으며 등하교를 했고, 십대의 허기진 배를 술지게미로 채우기도 했다. “술을 짜내고 남은 건덕지가 술지게미거든, 근데 그것도 먹으면 달짝지근해요. 그리고 배고팠을 그 시절엔,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었고… 사실 그게 뭔 맛이 있겠어? 배가 고프니까 우선 배를 채우려는 거지… 그 시절에 무슨 맛을 찾아, 그것도 몰래 훔쳐 먹는 건데, 먹다가 양조장 직원들한테 걸리면 또 얼마나 혼나고 그랬는데….” 지금의 지평양조장에서는 쌀막걸리와 밀막걸리가 나오지만 과거에는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쌀로 막걸리를 빚을 수 없었다. 먹을 쌀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가 먹은 술지게미 역시 쌀이 아닌 밀가루로 만든 술지게미였다. 밀막걸리와 술지게미에는 지난 시절, 이 땅에서 살아가야했던 이들의 고단함과 허기진 아픔이 서려있다. “우리 어릴 때는 쌀막걸리는 거의 보기 힘들었거든. 지금은 식량이 남아도니까 쌀 같은 거를 하지, 옛날에는 쌀 가지고 술을 만들 생각도 못했지.” 지평막걸리를 마셔본 사람들은 술 마신 다음날 머리가 아프지 않고 숙취가 없어서 좋다는 평가를 한다. 감미료를 쓰긴 하지만 기타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또 하나 막걸리의 고유한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물과 쌀인데, 김문경 씨는 지평면의 물과 쌀은 그 맛과 질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럽단다. 특히 지평양조장 내에 지하수가 솟아오르는데, 그 물로 담근 술은 달짝지근하면서 사람들의 입 특히 고단한 농군들의 입에 착 붙는 맛이라 한다. “양조장에 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은 0.5마력짜리 펌프 여섯 대로 뽑아내도 그 물을 못 말릴 정도로 물이 깊고 좋아요. 옛날, 중·고등학교 시절엔 학교에서 시합을 하고 그러면 그 양조장 우물로 달려가서 그 물로 맨날 씻고 그랬어.” 지평 쌀이 좋은 이유는 명확하다. 쌀이 좋으려면 토양과 일조시간, 물의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지평이 이 삼박자가 딱 어우러지는 땅이다. “여기는 일조량도 좋고, 토양이 좋기 때문에 쌀 맛이 좋은 거예요. 물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술 익는 마을의 오래전 풍경

지평은 역사가 깊은 땅이다. 과거 지평은 ‘현’이었으며, 70년대까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노포집도 많았고, 장날이면 군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고도산업사회로 들어서고 일거리를 찾아 하나, 둘 사람들이 도심으로 떠나면서 지금의 지평면은 조용하고 소박한 마을이 됐다. 70년대 지평면의 주막집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아 거 참 멋있지, 그냥 그 목로에서도 마시고, 방에서도 먹고. 그리고 아가씨들이 있잖아, 그때는 술집마다 아가씨들이 다 있으니까… 또 그때 그 시절에는 술 먹고 비틀비틀 거리고 그러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지” 줄지어 늘어선 술집, 술집을 찾아 분주히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 손님을 반기는 아가씨들의 웃음소리와 그 거리를 비틀 거리며 걸어가는 취한 사내의 뒷모습… 그 사이사이 싸움판도 벌어졌다. “싸움 구경이 아주 재밌었지. 매일 저녁이면 욕하고 싸우고 뭐… 그땐 그게 자연스러운 거였으니까. 제가 군대 가 있을 때 우리 친구들도 싸움판이 벌어졌었어. 명절 때 군인들이 나와서 술을 먹고는 지나가는 아가씨를 히야까시(놀림)를 했단 말이야. 아가씨를 가서 주무르고 그러니까 우리 애들이 그걸 보고는 ‘이 새끼’ 하면서 까버렸단 말이지, 그러고 나니까 군인들이 왕창 몰려나와 가지고… 친구들 팔 부러지고, 그게 또 무슨 자랑이라고 군대 있을 적에 그런 얘기를 친구들이 편지로 보내주고… 하하하” 과거 지평은 군인들과 인연이 깊었다. 인근에 군부대가 많아 외박이나 휴가를 맞이한 군인들이 속속 지평면에 찾아 들었고, 주막집, 식당마다 군인들이 북적거렸다 한다. 그가 기억하는 오래전 지평의 또 다른 술 풍경은 잔칫날이다. 옛날 지평면에서는 ‘잔칫날이다’ 그러면 술은 두말 할 것 없이 딱 막걸리였다. “어디 ‘장사 났다’, ‘잔치 났다’ 하면, 지금은 현금으로 부주하지만은 옛날에는 국수, 떡, 막걸리 한 초롱을 보냈지. 돈들이 귀하고 그러니까 막걸리로 부조를 한 거지 뭐. 마을에 양조장이 있으니까, 거기에 가서 ‘홍길동이네 집으로 한 통 보내줘’ 그러고 돈을 주면 거기서 알아서 배달해주고… 보통 장례를 치를 때 막걸리 통이 70~80통 씩, 큰 장사 같은 데는 100통까지 막걸리를 먹었어요.” 그는 1971년 지평면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당연히 그의 결혼식에도 사람들이 막걸리로 부조를 했다. “그럼 막걸리도 부조하고 뭐 결혼식이니까 국수도 하고… 결혼 때는 막걸리도 막걸리지만 국수 쪽으로 많이 했지 국수 한 뭉탱이 두 뭉탱이 그렇게들 했지… 근데 사실 막걸리 가격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아. 세월이 엄청 지나다 보니까 그런 기억을 다 잊어버리는 거야. 지금 내가 이야기 하는 거는 기억을 더듬어서 얘기하는 거지…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할 일이 없지. 이게 지나간 과거니까.”

농민들의 ‘힘’이자 ‘쉼’이었던 막걸리

지평면에서 막걸리가 가장 인기 있는 계절은 모심기를 시작하는 오뉴월이다. 술의 도수가 약해 농민들이 새참으로 즐기기에 좋은 막걸리는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에게 밥이자, 술이자, 휴식이다. “옛날에 어느 집이 ‘오늘 모 심는다’그러면 아예 직매장에서 막걸리 한 통을 모내기 하는 집으로 배달을 시켜… 그럼 거기서 논으로 밭으로 들고 나가서, 힘들 때 한 잔, 허기질 때 한 잔 마셨지.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기운이 떨어지면 일이 안 되니까… 지금은 술 문화가 많이 변했지. 옛날에는 배가 고팠으니까… 커다란 사발에다가 막걸리 한 잔씩 먹으면 배도 부르고… 근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살기 좀 좋아요. 그러니까 이젠 막걸리들을 잘 안 먹는데, 아니 이젠 막걸리를 먹는 게 별식이 되어 버렸지.” 옛 시절엔 지평을 비롯한 우리 땅에서는 농사를 짓는 자리에도, 장례를 치르는 자리에도, 잔치를 벌이는 자리에도 늘 막걸리가 함께했다. “옛날에 있잖아. 논 주인이 일꾼들 좀 대우를 시원치 않게 하잖아. 그럼 막걸리 한 통을 받아다 놓으며 잽싸게 먹어 치워버려, 그리고는 술 없다고 난리를 치지, 그림 주인이 또 가서 가져와야 되잖아. 귀찮게 하는거지… 그땐 그런 재미도 많았지 뭐….” 힘을 얻을 밥으로, 흥겹게 취할 술로 즐겨 마시던 막걸리를 과거 김문경 씨는 남다르게 즐기기도 했다. 막걸리 진땡이에 인삼과 에너지음료를 넣어 숙성시켜만든 보양음료, 즉 보양막걸리를 만들어 마셨다. 그에게 막걸리란 무엇일까? “술이지 뭐….” 우문현답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술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게 즐거움이지. 왜 그러냐면 우선 술 한 잔 들어가면 기분이 좋잖아. 그니깐 이 술이라는 성분도 마약하고 비슷한 거야 내가 볼 적에는. 내가 담배를 끊은 지 한 10년이 됐지만, 옛날 농사일을 힘들게 하다가 쉴 참에 담배를 한 대를 피면 그게 그렇게 저거 하잖아. 막걸리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먹으면 이게, 기분 좋고, 친구들이나 이런 사람들 만나서 술 한 잔 씩 권하고 그러는 게 정도 느껴지고….” 그에게 막걸리는 추억이자 청춘의 한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