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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역사 - 그 많던 가양주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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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많은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우리 술

우리의 술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우리 술’은 무엇일까? 또 가장 ‘좋아하는 술’은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소주가 서민의 술로, 자리 잡았다. 매일 전국에서 엄청난 양의 소주가 판매되고 있다. 그 한 예로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로, 2001년부터 세계 증류주(Distilled Spirits) 판매량 부문에서 14년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처럼’은 세계 판매랑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서민의 술로 자리 잡은, 우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소주가 꼭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은 아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청주(혹은 약주)와 막걸리(혹은 탁주)를 주로 마셨다. 귀족은 청주를, 일반 백성들은 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소주 같이 센 술을 만드는 법도 잘 몰랐다. 우리 조상들이 소주를 알게 된 것은 몽골의 영향으로, 고려 말,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이들이 먹던 소주가 고려에 소개 됐다. 이 때의 소주 또한 지금 우리가 마시는 것과 다르다. 우리가 시중에서 많이 먹는 소주는 주정(酒精), 즉 에탄올(먹는 알코올)에 물을 타 만든 희석식 소주이다. 반면에 우리의 전통 소주는 막걸리의 원료인 ‘밑술’을 증류해서 만드는 증류식 소주이다.

우리 술의 역사는 언제부터?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술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안타깝게도 언제부터 술을 빚어 먹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또한 어떤 방법으로 술이 처음 제조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한국 역사에서 술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삼국사기(古三國史記)>로, 고구려를 세운 주몽(동명왕)신화를 보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능신연못가 수궁에서 유화라는 여자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주몽을 낳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물론 설화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의 술 내력도 그 만큼 오래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로 내려오면서 술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이 다양해진다. 고려중기 고종 때 풍류객 이규보가 쓴 가전체설화 ‘국선 생전’에는 이화주, 자주, 파파주, 천금주, 소주, 초화주 녹파주 등 수십 가지 종류의 술이 등장해 주류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피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우리의 가양주 문화가 꽃을 피우고 전성기를 누린다.

우리 전통주의 뿌리, 가양주!

가가호호 빚어 전성기를 이루던 가양주는 1900년대 들어 수난의 역사를 맞게 된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후 일제는 직접 술을 제조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자, 우리 전통주에 마수를 뻗친다. 모든 술에 대해 세금을 매기기 시작한 것이다. 1909년 최초의 ‘주세법’ 제정 이후, 1916년에는 더욱 강화된 ‘주세령’을 반포해 가양주 문화를 말살하기 시작했다. 주세령의 내용을 보면 1. 자가용 술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
1. 자가용 술의 제조자가 사망했을 경우 그 상속인은 절대로 주류를 제조할 수 없다.
전 항에 위반했을 때에는 이천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 약 10원)
이때부터 가양주 제조가 ‘제한면허제’로 변경되면서 사실상 금지와 다를 바 없는 현실을 맞이한다. 이로 인해 1916년 36만 개소에 이르던 전통 가양주 면허제조장이 1929년 265개소, 1932년 1개소로 줄어든다. 또한 일제는 각 고을마다 주류 공장을 지정해서 생산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들여온 ‘주정’이라 불린 에탄올을 술에 섞어, 일본식 청주로 둔갑시키며, 우리의 전통주 문화를 변질시킨다. 이렇듯 우리의 전통주는 일제의 통제 하에 품질과 규격이 단일화 되었으며, 총 5차례에 걸친 강화, 개정된 주세령으로 마침네 전통주는 설 자리를 잃고 만다. 1945년 해방 후에도 전통주의 수난은 끝나지 않는다. 1952년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이 땅은 폐허로 변해갔다. 이후 1965년엔 먹을 곡식도 부족한 상황이 되자 ‘양곡보호령’ 선포, 일본식 청주를 제외한 쌀로 빚은 모든 술은 불법화 하게 된다. 이렇게 가양주에 뿌리를 둔 우리 술은 80년 만에 그 자취를 감추었다.

되살아나는 가양주의 향기

80년대 들어 우리의 전통주는 조용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양곡 사정이 호전된 것이다. 더불어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의 문화를 부활시키자’는 명목 아래, 전통주제조면허 허가, 전통주 발굴 및 무형문화재 지정 등 일제에 의해 끊어진 전통주의 맥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잃어버린 전통주를 되살리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전통명주 - 다시 쓰는 주방문> 박록담 저 / 코리아쇼케이스